어릴 적 우리 집 냉장고에는 늘 요구르트가 가득했다. 요구르트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할머니가 항상 사놓으셨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부터 요구르트를 좋아한 건 아니었다. 어느 날 할머니가 처음 요구르트를 사 오셨는데, 한 개만 먹으니 양이 차질 않아 2개씩 먹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할머니는 손자가 요구르트를 좋아하는 줄 아셨고, 그 이후 늘 요구르트를 사주셨다. 늘 냉장고에 있었던 요구르트를 매일 먹다 보니 요구르트가 실제로 좋아졌고 점점 먹는 양도 늘었다. 물 대신 요구르트를 먹기도 했는데, 나중에는 하루에 4-5개는 거뜬히 먹었다. 요구르트가 떨어질 때 즈음이면 할머니는 또다시 이따만큼 사두셨다. 할머니가 집에 계실 때만큼은 요구르트가 떨어질 걱정을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시골에 잠깐 가실 때를 빼고 늘 집에 계셨다. 할머니가 차려주시는 밥을 먹고, 시간만 나면 축구를 하러 운동장으로 뛰쳐나가는 게 일상이었다. 그 시절에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축구를 할 정도로 푹 빠져있었고, 학원을 빼먹고 축구를 하는 일도 많았다. 학원에서 내가 오지 않았다고 집에 전화를 하면, 할머니는 나를 찾으러 학교 운동장을 돌아다니셨다. 농사일을 하시느라 굽은 허리로 내 이름을 부르며 찾아다니셨다. 나는 어린 마음에 그 모습이 부끄러워 피해다니곤 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시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고 그제야 집으로 돌아갔다.
할머니는 몇 년 뒤 시골로 돌아가셨다. 더이상 나를 찾으러 다니시는 할머니를 피해 다닐 일도 없었고, 요구르트가 냉장고에 가득 차있는 일도 없었다.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던 요구르트를 이제는 먹지 않는다. 그렇게나 자주 먹었던 그 요구르트 맛도 이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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