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년 11월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한 사람으로서 사회를 오롯이 살아가기 위해 미래의 밥벌이를 위한 준비를 착실히 하고, 둘도 없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우리를 닮은 자식을 만나고, 몸 담고 있는 직종에서 크지는 않지만 프라이드를 느낄 만큼의 성과를 이루고, 아내와 함께 자식들이 한 걸음씩 나아가는 모습을 뒤에서 묵묵히 바라보고, 지인들의 축하 속 은퇴 후 아내와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며, 가끔 손주들도 돌봐주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고
눈 감는 날에는 나를 바라보는 가족들에게 편안한 웃음을 남기고 가고 싶다. 그때에 생전 회고할 때 적당한 포만감 같은 기쁨을 느끼고 싶다.
누군가는 평범한 게 가장 힘들다고 말한다. 평범하기 위해 얼마나 애써야 하는지 아는지, 평범함을 추구할 때 수반되는 필연적인 치열함을 모른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며,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정도나 그릇의 크기는 다르기에 내가 무어라 훈계질 할 수도 없고 그럴 깜냥도 안되지만 분명한 건 평범함이 높아보이고 버거워보이는 우리는 정상궤도에서 벗어났다.
얼마 되진 않지만 슬슬 나이짬이 차면서 느껴지는 게 있는데, 누구나 다 하는 일이라고 해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점점 사회로 나아가며 혹은 떠밀리며, 우리는 이전과 달리 어느 하나 쉽게 얻어지지 않는 세상을 만날 것이고 무언갈 이루기 위한 노력의 정도를 살갗으로 점점 느끼게 될 것이다.
그 정도를 알았으면 그만큼 노력하면 되지 않겠는가. 힘들다고 투덜거리는 것은 친구를 만나 술잔에 적셔 넘겨버리면 된다. 우리를 기다리는 사회와 상사는 그런 우리가 필요없다. 인지했으니 그저 실천하면 된다. 나의 그릇은 내가 만든다.
#2
참으로 정체 모를 냉소와 비관의 연말이다. 남들은 크리스마스며 연말이며 대부분의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특히나 인관관계에.
스물넷에서 다섯으로 넘어가는 기점에서 보는 연말은 필터를 씌운 듯 흑백이다. 연말이라 화려히 수놓인 가로수의 불빛장식을 보면 이쁘단 생각도 잠시 그 위에 퀘퀘묵혀있을 먼지가 떠오른다. 화려한 빛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
군대에 있을 때 ‘나의 아저씨’란 드라마를 재밌게 봤다. 거기에 나왔던 대사 중 인상깊은 부분이 있었는데, 내가 무언가로 힘들 때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되뇌었다. 그게 좀 과했던 걸까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닌게 되어버린 느낌이다.
연말에 할머니 상을 치뤘다. 할머니는 눈을 못 뜨셨지만 장손으로서 할머니 마지막 숨을 배웅해드렸다. 친척분들은 할머니가 생전 겪으셨던 고생들을 나열하시며 울음을 토하셨다. 할머니 인생의 의미는 어떤 것을 향했나.
장례식이라 조화가 참 많이 들어왔다. 그곳에서 뉴스에서나 볼법할 이름들이 많이 보였다. 조화를 받은 분들의 어깨가 조금 올라갔다. 그것들이 그분들에게 의미를 하나 채워줬을까.
의미있는 삶을 지향한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 드는 생각은 그것조차 무슨 의미가 있나.
이렇게 글 하나 뿡 싸지르고 냉소와 비관이란 최소한의 의미를 부여한다. 진정한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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