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속담 중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무식하여 글을 알아보지 못함을 놀리는 말이다. 나는 책을 읽다 잠시 다른 생각에 빠질 때가 더러 있는데, 이때 스스로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라’며 타박의 성격이 짙은 푸념의 표현으로 사용하곤 하였다.
학창 시절 나의 독서는 그리 자유롭지 못하였다. 순수하게 독서만을 위한 독서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독서라는 행위를 넘어 독후감 경진대회나 독서 토론 동아리 등 목적성이 다분한 독서를 하였다. 이 시기의 독서는 그다음 단계에 가시적인 결과를 낳기 위한 이해타산적인 수단에 불과하였다. 그렇기에 독서 중 잡념에 사로잡히면 마치 잘못이라도 저지른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나의 독서는 성인이 되고서야 비로소 자유로워졌는데, 생활기록부에 한 줄 추가하기 위한 강제성에서 어느 정도 해방되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 졸기도 하고 다른 생각에 빠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집중에 대한 사소한 집착이 내면 어딘가에 잔존하였다.
이내 나는 글쓰기를 통해 이 집착으로부터 완전한 해방을 맞이하였다. 나는 독서 중 떠오르는 생각들을 글로 옮겨 정리하는 버릇을 길렀고, 생각이 정리되면 이어서 책을 읽었다. 이후 쓴 글들을 모아 보니, 글쓰기라는 행위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자 내면의 대화였고 나에게 잡념의 당위성을 부여해주었다.
나에게 독서는 책의 내용을 소비하는 콘텐츠의 기능과 더불어 나를 더 알아가기 위한 수단이자 도구로 기능한다. 나는 여전히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라’고 속으로 되뇐다. 그러나 이제는 이를 나와의 대화를 시작하는 반가운 표현으로 사용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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